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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과 사회성 키우는 '상황 카드놀이'

sdsaram 0 6440

판단력과 사회성 키우는 ''상황 카드놀이''
의사표현에 서툰 아이, 재밌는 상황카드 놀이로 표현력을 기르자!


울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아이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2주째 되는 날이었다. 아이를 만나러 청주로 내려가는 내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유치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있을까? 선생님께 꾸중을 듣진 않았을까? 온갖 걱정과 궁금증과 기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부터 걱정이 더 늘었다. 친정엄마의 전화 목소리가 밝은 것으로 볼 때 아이가 단체생활에 별 무리 없이 적응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1년 중 3분의 2를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가 매일매일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다른 집 아이들에게 주눅이 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다가 아이와 마주쳤다. 또래 친구와 놀고 있던 아이는 엄마 아빠를 보자마자 환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5일 만에 안아보는 우리 아들. 늘 이 순간은 몇십 년 만에 어릴 적 단짝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잃어버렸던 아이를 다시 찾은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 건영이 유치원 다니는 거 재미있어?”
“응.” 대답 소리가 우렁차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걸 보니 청주로 오는 길 내내 머리를 꽉 채웠던 걱정은 기우였음이 분명했다.

아이는 친구와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려는데 “잠깐만요!” 하는 소리와 함께 4~5명의 꼬마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우리 아이보다 한두 살쯤 많아 보이는 여자 아이가 웃으며 인사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건영이는 그 아이를 못 본 척 하는게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우리 아이에게도 이제 친구가 생겼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체험학습을 떠나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이 아이를 돌보지 않은 5일간의 죄책감을 어느 정도 씻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도 친정부모님에게는 얼굴만 비치고 곧장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좀 전에 마주쳤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건영이에게 아는 척을 했던 그 여자 아이가 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이번엔 건영이도 마지못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아이들이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쟤 누구야?” “있잖아. 왜 저번에 밥 먹을 때… 걔잖아~.” “아~ 만날 우는 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건영이를 쳐다보자 건영이가 멋쩍은 얼굴로 변명을 했다.
“엄마, 그게 아니라 저번에 카레 나왔을 때 먹기 싫어서 딱 한 번 울었어.”

아이들과 헤어진 후 아이에게 살짝 유도질문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건영이는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딱 한 번 운 것이 아니었다. 먹기 싫은 카레가 나왔다고 울고,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았다고 울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울고….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뜻밖에도 아이는 우는 것으로 의사 표현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에게 사회성을 키워줄 기회가 없었구나.’

엄마들끼리 친해지면 아이들 역시 친구가 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할머니 손에 크는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대화할 기회도 없다. 더욱이 무엇이든 알아서 챙겨주는 할머니의 보살핌에 익숙해서 스스로 제 것을 챙기고 제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렀던 것이다.


놀이를 가장한 사회성 훈련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익힐 기회가 없었다면 교육을 통해서라도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수밖에. 사회성이 부족해 단체생활이 버거운 아이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상황 카드놀이다. 우선 아이가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접하는 당황스러울 만한 상황들을 추측해봤다.

급식 시간에 먹기 싫거나 못 먹는 음식이 나왔을 때,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 앞에서 발표나 노래를 시켰을 때, 우리 아이가 그네를 탈 차례인데 다른 아이가 가로챘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자리를 뜨면 자신이 놀던 장난감을 다른 아이에게 빼앗길 것이 분명할 때, 다른 아이의 폭력에 대응한다는 것이 그만 코를 때려 코피를 냈을 때 등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설정해내느라 남편과 나는 진땀을 뺐다. 정리해보니 이런 상황들 중에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싶은, 어른으로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여섯 살배기 꼬마에게, 그것도 온실의 화초처럼 할머니 치마폭에서 자란 아이에게는 시련임이 분명했다.

상황들을 글로 적어본 후 이를 A4 용지에 그림으로 표현했다.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림책을 뒤져 비슷한 상황의 사람 모습이나 표정을 찾아 따라 그렸다.
“점심시간에 싫어하는 카레가 또 나오면 어떻게 할 거니?”
카레 음식 앞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꼬마의 모습을 그린 카드를 내밀며 아이에게 물었다.

“싫어, 난 카레 싫어. 안 먹을 거야.”
“아무것도 안 먹으면 배고플 텐데 어쩌지?”
“밥하고 카레하고 따로 주면 밥은 먹을 수 있는데….”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그럼 다음엔 선생님께 밥과 카레를 따로 달라고 말해볼래? 네가 말할 수 있겠니?”
“응, 할 수 있어. 카레 냄새 나면 선생님한테 말할 거야.”

이번에는 건영이가 그네를 타려고 하는데 다른 아이가 먼저 타겠다고 떼쓰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럴 때 건영이는 어떻게 할까?”
“음, 나보다 어린 아이면 그냥 타게 해줄래. 근데 그렇지 않으면 내 순서라고 말할 거야.”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 조금만 타라고 할 거야.”


예측불허의 세상을 가상 체험하다

아이의 대답이 매번 엄마 아빠의 생각과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른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한다’는 정답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다양한 상황을 가상 체험함으로써 다음에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좀 더 여유 있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부모와 아이와의 대화 속에 등장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꼭 맞는 해결 방안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미 생각해봤던 문제에 직면했을 땐 적어도 당황해서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아동 전문 연구소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런 상황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판단력은 물론 문제 해결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요즘처럼 형제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바깥세상 일이 집에서의 생활처럼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카드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이에게 닥칠 여러 가지 상황을 추측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니,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예측불허(?)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에게 판단력과 문제 해결력을 길러주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있을까?


The Tip 상황 카드놀이 방법

1 학교, 학원, 놀이터 등 아이의 생활권을 파악한 후 장소별로 아이에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추측해 A4 용지에 한 가지 상황을 사인펜이나 연필로 그린다.
2 아이에게 카드를 보여주고 어떤 상황인지 설명한 다음, “이럴 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어본다.
3 엉뚱한 대답을 하더라도 “아, 그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고 아이의 대답을 존중해준다.
그런 다음 아이의 대답대로 했을 때 새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2~3가지 해본 뒤 엄마의 생각을 얘기한다. 이 놀이의 목적은 한 가지 상황에 다양한 문제 해결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데 있다. 따라서 정확한 해결 방법을 이끌어내려 애쓰지 말고 아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결 방법을 내놓도록 한다.


이수희 씨는

전 육아 전문 잡지 기자.
육아 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엄마와 아이가 교감할 수 있는 놀이 방법을 고민하고 아이에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블로그(http://profile.blog.naver.com/mocha_mo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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